여성·시민사회단체들은 21일 정부의 ‘성평등 예산’ 삭감에 대해 “국회는 윤석열 정부가 삭제하고 파괴한 성평등을 복원할 권한과 책임이 있다”고 성평등 예산 복구를 촉구했다.
12개 협의회 및 연대체, 569개의 단체들이 모인 ‘여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예산 감축 철회 촉구 공동행동(공동행동)’와 민주당 권인숙·신현영·이수진·허숙정·이재정 의원과 정의당 이은주 의원,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등은 이날 오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앞서 이 단체들은 100여 명의 시민들과 함께 이날 오전 10시 광흥창역부터 국회의사당 본관 앞까지 윤석열 정부의 여성폭력방지 및 폭력피해자 지원예산 삭감 반대피켓을 들고 행진했다.
정부는 2024년 정부예산안에서 ‘여성폭력 방지 및 폭력 피해자 지원 예산’을 120억 삭감했다. 일터 내 성차별·성희롱 상담을 24년간 이어온 고용평등상담실 운영 예산도 전액 삭감했다. 이주여성노동자들의 주거와 안전을 상담·지원하는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9곳도 예산 전액 삭감으로 모두 문을 닫게 될 위기에 처해있다.
이들은 “예산 삭감은 단순히 민간 보조금을 끊는 차원이 아니다. 국가가 앞장서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여성폭력을 외면하고, 여성들이 일터에서 겪는 차별과 폭력을 등한시하겠다는 뜻”이라며 “젠더폭력 예방 관련 예산의 대대적인 삭감은 국가가 국민을 보호할 책무를 져버린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 예산 120억은 성폭력 피해에 대한 상담과 치료, 법적 지원 등 폭력 피해에서 피신할 수 있는 예산”이라고 규정했다.
김 소장은 “여성가족부는 쉼터와 가정폭력상담소에 사람을 줄이겠다고 하는데, 피해자보호시설은 24시간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며 “종사자 1명 감원되면 주40시간 초과 근무해야 하는데 인건비는 최저기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게다가 현재 쉼터의 시설 설치기준 면적은 국토교통부의 1인 최저주거 기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예산을 확충해도 부족할 판에 여성가족부 예산안은 역행 중”이라고 비판했다.
허오영숙 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지난 10월에 경남 진주에서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이 남편에게 살해당했다. 공교롭게도 경상남도는 전국에 10개 있는 이주여성상담소가 없는 지역 중 하나이고, 경남 진주시는 전국에 28개 있는 이주여성쉼터조차도 없는 곳”이라며 “이주여성상담소를 확대해야 하고, 보다 체계적인 이주여성 안전망을 수립해야 할 시기에 여성가족부가 여성폭력 지원체계를 거세게 흔들고 있다”고 말했다.
2020년 경기도 파주에서 한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가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사망한 사건도 언급했다. 그는 “산재를 인정받는데 사망하고 나서 2년 가까이 걸렸는데, 산재 인정을 받기까지 그 일선엔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가 있었다”며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의 업무를 직접하겠다면서 2024년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가 이주가사 노동자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이 정책의) 방점은 외국인 노동자가 노동권을 보장받으며, 노동을 하는 데 있지 않다. 싼값의 노동력에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가 사라지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렵기만 하다”고 말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사회적 약자 예산 및 성평등 예산을 대폭 삭감해 놓고 ‘약자 복지 강화’, ‘저출산 극복’을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윤석열 정부가 삭제하고 파괴한 성평등 예산을 국회가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숙정 민주당 의원도 “일방통행식의 성평등 예산의 졸속 삭감은 여성과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낸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 체계와 시스템을 결코 파괴할 수 없을 것”이라며 “성폭력 방지와 피해자 보호, 지원에 대한 국가의 당연한 책무를 국회가 챙기고 바로잡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들은 “해당 예산을 주관하고 있는 정부 부처는 예산 삭감 이유로 ‘지원 실적 반영, 사업 효율화, 운영 방식 일원화’를 말한다. 국가는 차별·폭력 피해자 지원을 수치에 기반한 실적 평가로 바라봐서는 안된다”며 “국가는 피해자들의 일상회복을 위한 조건을 찾고, 지원 체계에서 보완할 점은 없는지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과 법에 반영하고,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갑자기 아프거나 실직했을 때, 임금이 체불되고, 차별과 폭력 피해가 있을 때 국가의 사회적 개입을 경험하면서 사회안전망이 있다고 감각한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2024년 예산안이 통과되면 시민들의 일상적인 안전이 삭제되는 것”이라며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국가가 직접 폐기하는 것을 더이상 지켜볼 수 없다. 성평등 관점 없이 피해자 지원 예산을 삭감한 2024년 정부 예산안을 국회가 폐기하라”고 촉구했다.